조유진 “민주공화국 헌법체계…구한말 지식인·농민의 혁명적 에너지서 싹터” [북악포럼]
“동학농민군·만민공동회, 하나의 헌법 기원 흐름으로 봐야”
“임시정부만큼 임시의정원 활동 매우 중요…임시헌정 제정”
조유진 소장은 이날 강연 주제인 ‘대한민국헌법의 기원과 제헌 전야’를 소개하며 “제목만 보면 엄청 무겁게 느껴지겠지만, 법학에서 중요한 건 법의 정당성과 법의 효력”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강연도 헌법 조문, 판례에 치중하기보다는 오늘날 헌법의 틀인 기본권 제정과 권력분립이 구체화되기까지의 역사, 3.1운동의 의미, 임시정부 활동에 가려진 임시의정원의 중요성 등 헌법 기원에 대한 역사적 흐름을 되짚는 내용들로 꾸려졌다.
조 소장은 먼저 민주공화국 헌법체계는 해방 이전부터 자체적으로 싹이 움트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방 이후 서양헌법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민주공화국 헌법체계가 자동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라면서 “구한말부터 지식인과 농민들의 혁명적 에너지 속에서 싹터온 것”이라고 말했다.
해방 이후 미군이 남한에 주둔하면서 당연히 민주공화국으로 제도 틀이 바뀐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여기서 말한 싹은 구한말 대표적인 역사적 사건인 동학농민 운동 등을 말한다.
조 소장에 따르면 구한말 원시헌법문서의 ‘헌법성’ 판단은 기본권보장과 권력통제(분립) 여부를 통해 정해진다. 헌법이란 명칭을 사용한다고 헌법이 되는 게 아니라 앞서 말한 조건들을 충족해야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3.1운동과의 연계성도 헌법성 판단의 중요 잣대중 하나이다.
구한말 원시헌법문서는 크게 △정강14조 △폐정개혁안 △홍범14조 △헌의6조 △대한국국제 등이 있다.
먼저 정강14조는 1884년 갑신정변을 계기로 개화파가 주도해 만들었으며, 문벌폐지와 인민평등권리 내용이 담겨있다. 지도층 내부의 정변형식이라는 데 의미가 있지만 일본에 의존했다는 한계도 분명하다. 헌법성 판단 기준으로 보면 문벌폐지 등을 통해 기본권보장을 담았지만, 권력통제는 빠져있다.
폐정개혁안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계기로 탄생했다. 노비문서 소각, 토지분작 등 인권사상과 사회경제적 개혁 추진을 담았다.
1894년 나온 홍범14조는 동학운동 진압 후 군국기무처 주도 하에 만들어졌다. 문벌폐지, 인민평등권리가 담겼다. 특히, 동학농민운동의 영향으로 신분제를 폐지했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왕권을 옹호하며 권력통제 내용은 없었다.
왕권을 통제하는 내용이 담긴 최초의 원시헌법문서는 헌의6조이다. 1898년 독립협회 주도로 만들어진 헌의6조는 왕권과 관료를 통제하고 재판을 받을 권리를 명시했으며, 예결산 공개 조항도 담았다.
이어 1899년 나온 대한국국제는 내용적 면에서 헌의6조보다 후퇴했다. 고종황제 주도로 만들어진 대한국국제는 기본권보장은 물론 권력통제가 모두 빠졌다. 자주독립을 명시하되 군권무한과 전제정치를 옹호했다. 다만, 헌법 형식을 갖춘 최초 문서라는 점에서 헌법적 의미가 있다.
그는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 만민공동회 등을 계기로 나온 원시헌법문서들은 결국 전체적으로 하나의 헌법 기원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고수현기자